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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Hong Jinwhon


INTRO

1부터 10까지의 수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른다면 당신은 어떤 숫자를 선택할 것인가? 좋아하는 숫자를 고를 수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머리속에 딱 떠오르는 숫자를 뽑을 수도 있다. 한편, 당신이 선택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선택은 컴퓨터에 맡겨버리고 컴퓨터가 뽑아준 숫자를 그대로 수용해보는 건 어떨까? 사다리 타기나 회전 룰렛 앱이 도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컴퓨터는 어떻게 랜덤하게 숫자를 고를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코드에 따라 명령을 수행하는 컴퓨터가 ‘인간’을 흉내 내기라도 하는 걸까? 설마 인공지능? 랜덤 숫자를 출력하는 과정에서 컴퓨터는 의사난수라고 하는 수열의 도움을 받는다. 난수는 아니지만 난수로 취급이 가능한 숫자들의 배열인데, 너무 복잡하거나 정교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웹을 돌아다니며 맛있게 쿠키를 굽고, 누군가는 구워진 쿠키를 맛있게 야금야금 먹으며 파고들어 온다. 틈틈이 브라우저 안으로 침투하는 추천 영상과 광고들에 맞서 1부터 10가지의 숫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는 홍진훤 작가의 출품작 〈DESTROY THE CODES〉를 중심에 두고, 유튜브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과 시각 권력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1부

최조훈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도피주의’에 대한 생각과 출품작의 시작점이 궁금해요.

홍진훤
처음에 제목과 대략의 내용만 들었을때는 ‘도피주의’가 조금 피상적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나 인종 문제에 대한 이슈가 기업 홍보에 사용되곤 하는데, 사실 정말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또 다른 시장을 만들 뿐이죠. 비엔날레 소개글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답장을 썼어요. 주제에 대한 이해와, 비판, 의견 등의 내용이었고, 결국 《줌 백 카메라》에서 했던 작업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굿 나잇〉(2019)의 버전업과 사진 작업을 함께 전시하기로 방향을 설정했어요.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 채널 1〉, 2019, 시리아 내전 관련 영상, 자유 시리아군 선언문, 유튜브 스트리밍 플랫폼, 가변 크기.
SeMA 벙커 전시 전경. 작가 제공. 사진: 홍진훤.

송하영
《줌 백 카메라》에서 선보인 작업을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진훤
네. 《줌 백 카메라》는 박수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였는데 동시대의 구루에 대해 탐구해보자는 기획이었어요. 그때 제가 SNS를 비롯한 플랫폼 서비스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삶의 태도나 양식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를 둘러싼 플랫폼 환경을 관찰 할수록 그런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결국은 시각 세계라고 생각을 했어요.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넘어서 메타버스까지 가도, 결국은 어떤 시각 세계에 노출되거나 편입되고, 이런 것들이 모든 삶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가상과 현실은 이미 중첩되어 있고 가상의 세계에서 가시성을 획득하는 것이 나라는 존재의 토대가 되고 있는 듯 했어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다고 느껴졌어요. 결국은 ‘기술 발전’이라는 판타지 아래에서 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결국 더 자본 시장에 예속되는 것 같았어요. ‘나는 어떤 시각물이 되고, 어떤 시각물 안에 존재할까’,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라고 했을 때 결국 저의 관심은 알고리즘으로 갔던 거죠. 그래서 ‘알고리즘을 파괴하자, 그렇지 않으면 이 모습들이 가속될거고, 여기에 더해 웹 마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대체하려는 웹3.0까지 등장하면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이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조훈
우리가 그 발전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더 이상 손 쓸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인가요?

진훤
사회의 통제 시스템이라는 게 있잖아요. 크게 보면 자본주의가 있고, 좁혀서 보면 신자유주의와 4차산업혁명으로 호명되는 기술 자본주의도 있고요. 이런 통제 시스템들이 우리의 삶을 재조직하고 통제하며 사회를 규정하고 움직여 가는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통제 기술의 방향은 우리가 시민사회에 기대하고 신뢰했던 무엇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힘을 소멸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지구적으로 반지성 사회로 나아가는듯 하고, 투쟁보다는 혐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을 계속 만들어가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세계를 유지시키는 힘 자체가 소멸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 굴러갈 때도 있고 잘못 굴러갈 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방향으로만 가지 않게 만드는 힘들이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 같은 일종의 견제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조훈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구체화되었나요?

진훤
기획자분들에게 선언문을 한번 써보겠다고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액티비즘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선언문을 써서 보냈죠. 내용이 비약적이고 사람들의 행동이 요청되는 일종의 유사 운동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것을 하려면 당연히 선언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언에 맞는 강령이 필요하고, 그 강령이 아마 내가 만든 알고리즘이나 캠페인의 구조가 될 거고, 거기서 운동원을 모아야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DESTROY THE CODES〉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죠. 이 프로젝트는 사실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매개로 연결되고  시각화되지 못한 유튜브 안의 세계를 스스로 선택해서 스스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구독자들에게 영상을 보내면서 각자의 계정 알고리즘에 교란을 주는 방식이에요. ‘누구의 선택들로 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과 관련해서 기획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하영
그런 선언문의 형식이 사실 과거부터 쭉 이어져 온 일종의 나름대로 전통이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게 가진 탄탄한 발언 방식이 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사용 안 하는 형식이잖아요. 정치인도 유튜브 채널 다 갖고 있고, 브이로그를 찍고 그러니까. (웃음) 그래서 좀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조훈
원래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나요?

진훤
아, 저는 중학교 때부터 혼자 웹사이트를 만드는 게 취미였어요. 선언문에도 언급했지만, 저는 웹의 가치를 꽤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웹은 결국 정보와 정보의 연결이 가장 중요한 핵심인데, 그 정보를 담고 있는게 데이터베이스잖아요. 그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구조화해서 연결하고, 얼만큼 개방할지, 혹은 반대로 폐쇄할지 결정하는 것들이 웹을 다루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조훈
링크를 타고 돌아다니는 방식 말이죠?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 소개 웹페이지를 보면 각자의 규율이나 준칙, 강령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네이버나 카카오가 지속해서 AI 분야를 개발하고 있는데, 개발 관련 웹페이지를 보면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중이고, API 사용법을 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AI 윤리 준칙을 꼭 포함하기도 해요.

진훤
그렇죠. 말씀하신 하이퍼링크도 그렇고요, 그리고 예를 들어 구글 지도 역시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 지도에 우리가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떻게 구성해서 어느정도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줄지, 이런 걸 다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구조화해 놓거든요. 그런데 이런 빅데이터의 문제적인 부분 중 하나가 무차별적인 수집과 그로 인한 통제인 것 같아요. 수탈에 가까운 정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집적하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학습시키는지 우리들은 알 길이 없죠. 그냥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어요.

조훈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과 관련한 프로그램 개발에서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수집, 선정, 제공과 관련한 문제는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기술적인 문제보다 훨씬 고민이 많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웃음)

진훤
수집된 데이터를 보고 결정을 하겠지만, 저는 랜덤이 갖고 있는 정치성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그것이 진짜로 ‘랜덤’한것이가 하는 수학적인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예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 선출에 대하여 ‘제비뽑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사람을 데이터라고 가정하면, 어떤 데이터에 ‘누가’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어요. 프로젝트 선언문에도 ‘우리는 그 권력을 뺏어서 그것을 파괴할 것이다’ 라고 나와있거든요. ‘권력을 우리가 쟁취하리라’가 아니라 그 권력을 찾아서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어떤 데이터에도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런 퍼블릭 서비스를 만들 때 딜레마는 명확해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모집하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알음알음 이 시스템에 누구든지 들어와서 참여를 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점점 제가 관여하지 않아야 하고요. 한편으로는, 포르노물같은 예외적 데이터가 올라왔을 때 나는 이걸 통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문제가 계속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안 한다는 쪽이에요. 일종의 쓰레기를 유저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쓰레기라고 인지 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기고 일종의 공동의 합의가 생긴다면 인위적인 통제 장치 없이도 작동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플랫폼 이전 웹의 세계에는 분명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가치를 복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하영
다층적으로 문제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내가 자주 접근하는 계정에 기반해서 광고가 뜨잖아요. 그래서 더 친숙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간혹 진짜 나의 세계관에서 전혀 노출되지 않을 법한 이미지가 뜨면, 되게 놀라거든요. 그것 자체로 굉장히 불쾌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작동할지 정말 궁금해요.

진훤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은 영상을 구독자에게 보내는 거잖아요. 구독자는 무엇을 동의해야 하냐면, 나의 편리함을 포기하겠다는 걸 동의해야 돼요. 사실 엄청 편하잖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계속 보여주는 건… 그런데 구독을 하는 순간 그 편리함이 깨지는 거죠. 그 대신 나는 그 ‘편리함’이라는 가치 대신에 열린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닿을 수 있다는 가치를 선택한 것이고요.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이게 당연히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들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 ‘편리함’이라는 것 자체가 플랫폼 회사의 수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강제된 편리함이지, 사실은 내가 필요해서 내가 선택한 편리함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선언문의 마지막에 썼던 ‘댓가 없는 수고로움’, 내가 이걸 그냥 알고리즘이 주는대로 손가락을 당겨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사고하고 판단해서 무언가를 검색해서 보는 수고로움, 수시로 울리는 알람에 내 선택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이퍼링크를 타고 다니며 내가 수용할 정보를 스스로 선택하고 조직하는 수고로움. 이런 것들을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훈
생각해보면, 방금 말씀하신 수고로움의 과정들은 초기 유튜브가 생겼을 때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했던 방식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추천 알고리즘 시스템이 미흡했을 때는 친구나 지인들에게서 추천을 받아서 찾아보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러면 누군가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거냐?’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진훤
아까 말씀하신 부분이 초창기 웹의 세계, 웹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모든 정보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내가 어떤 정보를 취할지 결정하고 그것을 웹이라는 망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이요. 플랫폼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데이터가 단절되고 폐쇄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요.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봐야 트위터는 안 나오잖아요. 모든 게 단절되어 있어요. 이 데이터의 독점이 이윤추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고립된 세계를 벗어나야 하는데 웹의 죽음이 선언되고 나서 기존의 웹의 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 다음을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이미 플랫폼 기업들은 지금의 알고리즘과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요. 이제 다음 착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과도기적 시기인거죠. 우리는 결국 우리의 연결을 복원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데이터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당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기술에는 역진이 없다고 생각해요.

조훈
‘웹이 죽고 플랫폼의 세계가 도래했다’는 말이 이해되네요.

진훤
데이터가 돈이 되는 시기가 됐기 때문에 데이터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장 큰 돈벌이 수단이 돼버린 거죠.

하영
그런데 정말 쉽지 않겠다. (웃음) 왜냐하면 플랫폼화가 가속되는 상황이잖아요. 또 사람들이 플랫폼에 익숙해졌고요. 가령 어떤 정보를 원하느냐에 따라서 네이버에 검색할 때도 있고, 구글에 검색할 때도 있잖아요. 이렇게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게 일상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새로운 데이터 세계라는 것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 산발적으로 끝나는 운동에 그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진훤
그럴 수 있죠. 처음에 비엔날레 팀과 미팅할 때도 그랬는데, 이게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운동인지에 대하여 대화했어요. 난 모르죠, 운동가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게 개념미술에 들어가는 수행적인 활동인가? 그것도 아니야, 난 실제로 작동하길 원하니까. 저는 늘 그 사이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시스템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미술이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시각 세계에 나아가야 할 바, 기존의 시각 세계를 극복한 세계, 이 세계를 맞든 안 맞든 계속해서 제안해 나가는 것, 그게 미술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melting icecream〉(2021)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아카이블 계속 노출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각화 되지 않으면 결국 존재가 부정당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저항들을 끊임없이 보여야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쿠팡 노동자들이 저렇게 죽어 나가는데 과연 쿠팡이 이대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거죠. 이런 것들의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폭발해 나갈 테고, 거기에 대해서 저항들은 어디에선가 생길 거고, 또 두드려 맞고 사라질 거고, 또 실패할 거고 패배할 거고. 하지만 저는 반복되는 투쟁과 패배들이 결국 세상을 굴러가게 만든다는 믿음이 있어요. . 그렇다면 적어도 사회를 사람들, 철학이든 미술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 기존 세계의 극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제안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술이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하영
그럼 지금 하는 작업은 플랫폼 안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의 일종이라고 보면 될까요?

진훤
그렇죠. 저는 ‘미술은 시각 세계의 걸림돌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늘 표현해요. 지금 이들이 만들고 있는 관성의 세계가 있잖아요. 그들의 알고리즘이 끝없이 만들어내는 시각 세계가 있는데, 우선 무엇인가 그것에 걸림돌이 되어야 지금, 이것이 이상한 것이라는 감각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일종의 이상함을 만드는 거죠.

하영
기대된다. (웃음)

진훤
(웃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업로더가 필요한데 저는 최대한 시각에서 멀어진 사람들, 그러니까 배제된 사람들을 찾으려고 해요. 그 사람들이 고르게 하고 싶어요.

하영
말씀하신 시각이라는 게 미술계의 시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진훤
그 부분은 각자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이런 사람들을 상상해요. 가령 주류 패미니즘에서도 소외받는 사람들이라든가, 노동 운동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정규직 위주의, 양대노총 위주의 투쟁만 뉴스에서 접하지만, 그들에게조차도 배제받는 어떤 사람들. 그래서 나의 생존과 가시성을 획득하기 위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보지만 아무도 안 보는 그런 사람들. 유튜브의 이윤에 도움은 되지 않지만 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공 할 수 있는 영상들.. 그리고 좀 넓게 보자면 시리아 문제라든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그것을 안다고 해도 피상적인 큰 이야기들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어떤 대상이든 이 사회에서 점점 배제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싶어요. 물론 이 시스템이 그 수많은 배제된 시각 세계를 다 담을 수는 없을거에요. 다만 바라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이런 저항의 움직임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여기 저기서 벌어지길 바라는 거죠.



2부


조훈
〈DESTROY THE CODES〉 웹페이지를 보면, 코드 에디터 형식을 차용한 구성이 눈에 띄어요. 이 프로그램은 개발자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프로젝트의 속성을 시각화하기 위한 의도였나요?

진훤
네. 제가 사용하는 코드 에디터 프로그램을 참고했어요. 코드를 파괴하기위해 다같이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가는 그림을 생각했어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익숙한 환경이기도 하고요.

조훈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시각화되지 못한 분들을 우선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참여자의 모집과 런칭 직후의 활동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진훤
우선 제 주변에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많이 초대했어요.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분들에게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참여를 요청드렸어요. 설명할 때, 전문 용어도 많이 나오고 조금 어렵게 느끼는것 같아서 나중에는 '여기에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영상을 올리면 전세계 사람들이 다 보니까, 홍보 차원에서라도 올려달라'고 했어요. (웃음) 그 이후에는 서로서로 각자의 채널에 공유를 하시더라고요.

조훈
웹페이지에는 한글과 영어 뿐만 아니라 자동 번역 기능을 활용해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볼 수 있게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진훤
처음에는 접속자의 지역 정보를 활용해서 그 지역의 언어로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것 같아서 교차 검증이 가능했던 한글과 영어를 우선적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조훈
저도 구독을 신청해서 꽤 많은 메일을 받았어요. 이 영상을 열어보면서 자신의 추천 알고리즘에 변화를 주는 것이 프로젝트의 한 목적인데, 변화를 감지하셨나요? (웃음)

진훤
그렇지 않아도 테스트 계정을 몇 개 돌려보기도 했어요. 사실 저처럼 유튜브에 많이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존에 입력된 데이터들이 꽤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더 많은 노출과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물론 각자의 계정마다 차이는 있을거에요. 클립의 시청 시간에도 많은 영향을 받더라고요.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서 공유하고 싶은 영상을 리서치하는 과정도 알고리즘에 영향을 많이 미쳐서 이런 분들은 조금 더 변화가 빠를 수도 있어요.

하영
그럼 일부러 운동권 분들을 타켓으로 정해서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드렸나요?

진훤
네. 제가 아는 분들이 그 분야에 많기도 하고, 일종의 운동과도 같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빠를 거라 생각했어요. 기업의 독점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반자본주의 투쟁의 맥락을 잘 아시는 분들이니까요. 물론 운동, 투쟁과 관련한 것들만 업로드되는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는데, 초기에는 조금 그랬지만, 참여자들이 늘어나면서 조금 더 다양한 영상들이 업로드되기 시작했어요. 요즘엔 트로트 영상도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웃음)

조훈
이제 구독자가 꽤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량으로 메일을 발송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메일을 보면 영상의 이미지가 흑백으로 처리되어 보이는데, 의도하신 건가요?

진훤
처음엔 구글의 SMTP 서버를 이용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 차단이 되었어요. 메일링 서비스가 상업적인 이유 말고도 사용되는 곳이 많은데, 왜 차단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문제는 늘 그런 것 같아요.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는 거죠. 지금은 국내 업체 몇 곳을 찾아보다가 가능한 곳을 겨우 찾아서 발송하고 있어요. 이미지를 흑백으로 바꾼건 영상 썸네일과 제목, 제공자 정보 등 전체적으로 위계를 맞추고 싶었어요. 디자인적인 이유였던거죠. 그런데 구글의 지메일에선 영상이 무조건 컬러로 보이더라고요...

조훈
프로젝트에 대한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나 문제가 된 부분이 있었나요?

진훤
퍼블릭한 서비스를 프로그래밍할때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크롤링이에요. 크롤러들이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버튼을 다 누르고 링크를 수집하거든요, 그때 Null 데이터들이 엄청 들어와요. 이런걸 막는 CAPTCHA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를 하려다가 프로젝트 시스템이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프로그래밍적으로 막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웹페이지를 한국 호스팅 업체로 구축해 놓았는데 한번 해외로 우회해서 접속해봤어요. 텍스트로 구성된 웹페이지라서 용량이 크지 않은데도 데이터베이스 교환 속도가 너무 느린 거예요. 사진으로만 봤던 해저 광 케이블이 생각나면서 '정말 물리적인 선으로 연결되어 있나보구나.' (웃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 서버를 해외로 옮겼어요.

조훈
바다 건너 다녀오셨군요. (웃음)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입력한 영상 링크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무작위로 추출되서 메일링 리스트에 첨부되어 발송되고 있는데요, 디지털 안에서 랜덤하다는 건 엄밀히 말해서 그 의미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의사(pseudo)난수라고도 하는데, 사용하는 방식과 상황에 따라서 난수로 작동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처럼 현실과 디지털 사이에서 교환되는 랜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서 랜덤을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요?

진훤
제가 랜덤을 선택한 이유는 디지털에서 랜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떠나서, 이 시스템을 구축한 소유자로써 어떤 권력을 선취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더 커요. 제가 무엇을 선택하거나 제외하는 통제 권력이 되지 않겠다는 거죠. 선택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영상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들었어요.

조훈
랜덤을 선택했다는건 어떻게 보면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의 약속 같기도 하네요. 랜덤은 서로가 동등한 조건에서 소통한다는 프로토콜로 받아들이고 이는 최소한의 신뢰로 작동하고요.

진훤
네. 그런 신뢰가 쌓인다면 이상한 영상이 발송되었을 때, 어느정도 예상해서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영
지금까지 발송된 메일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상이 있을까요?

진훤
글쎄요, 사실 너무 다양하고 흥미로운게 많았는데 어떤 영상이 조금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는데, 영상 쪽 커뮤니티에서 꽤 회자된걸로 알고 있어요. 콘텐츠 소비를 가속하는 시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이야기들이 다시 등장해서 논의되는걸 보니까 조금 흐뭇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요즘 홍콩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영국으로 도피 아닌 도피를 많이 했는데, 그들이 연대의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나 봐요. 어떤 분이 그분들에게 이 시스템을 알려주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번 올려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대요. 그때부터 영국 쪽에서 접속이 많이 늘었고 홍콩과 관련된 영상들이 꽤 많이 올라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개입을 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걸 보니 흥미로웠어요.



조훈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진훤
우선 〈melting icecream〉 작업이 배급사가 생겨서 배급을 하게 될 것 같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기로 했어요. 요즘엔 내가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을 때 기록할 수 있거나 시각화해야 할 것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작업의 주제는 지금 리서치중인데, 울산의 흔들바위와 관련한 것들이에요. 그 바위가 안 떨어질 줄 알면서 저렇게까지 바위를 흔드는 사람들의 의도가 뭔지 궁금했어요.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안 밀텐데, 안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떨어질 때까지 밀잖아요. 이상한 욕망의 관계가 궁금했고, 또 울산은 저에겐 무척 중요한 지역이에요. 울산에서 일어났던 노동과 관련한 수 많은 문제들과 배반의 역사, 삼성 반도체 싸움에서 희생된 분들 등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미술계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하고 찾아보곤 하는데, 저는 민중가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중가요나 가수들의 삶 또한 운동 안에서 일종의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의 역할이 진짜 크거든요. 그분들이 전혀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 같고, 누군가 기록하거나 정리하지 않으면사라질 것 같아서 이에 대한 작업도 빨리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melting icecream〉, 2021, 싱글 채널 비디오, 4채널 사운드, 60분, 반복재생. 작가 제공.

하영
기대되네요! 인터뷰는 이쯤에서 마무리할까요?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진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