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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ma Key


Interview with Ryu Hansol


INTRO

크로마키는 영상 합성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카메라 센서는 RGB를 기준으로 빛의 정보를 저장하고,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의 RGB 정보 값 중 하나의 요소를 조작하는 것으로 작동한다. 크로마키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프레임에 갇힌 전체 이미지 중에서 일부를 추출하여 교체하거나, 다른 장소로 보내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분리된  이미지의 형상은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한 필수품은 스크린이다. 앞서 언급한 RGB 컬러 중 그린과 블루 스크린은 전경과 배경을 추출하기 위한 필터 기능을 한다. 물에 젖으면 투명해지는 라이스페이퍼처럼 콘텐츠를 감싼 스크린은 투명한 주머니가 되고, 입속으로 들어가 와그작 씹힐 때까지 컨테이너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스크린이 물리적인 속성을 지닌, 예컨대 단단하거나 출렁이는 벽은 아니다. 이 벽은 RGB 질료를 입혀 디지털로의 출입구를 만들기 위한 교환 장치일 뿐이다. RGB가 투영된 벽은 비로소 스크린으로 기능하며 투명해지기 시작하고, 현실과 디지털의 교환을 시작한다.

INTERVIEW

조훈
‘Decoding models’ 프로젝트는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미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그리고작업에서 디지털 디바이스와 모델링 툴tool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특히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 활용되는 구체적인 조작 방식과 그 배경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어요.

하영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주제가 ‘도피주의’인데,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해석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셨는지 궁금해요.

한솔
제가 엄청 도피 인간이어서 (웃음) 일단 좀 편하게 융마 감독의 주제글을 읽어봤어요. 도피주의가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어떤 가능성이 담긴 상태라고 보는 관점이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가치 판단 없이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장 중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해방감’이에요. 당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잠시동안 주는 그 해방감이 저에겐 큰 힘이 되고, 부담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 도움을 주더라고요.

하영
그렇구나. 해방감! 재미있는 도피방식이네요.

한솔
네. 제가 지금까지 B급 호러 장르를 차용한 영상 작업을 제작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키워드가 ‘해방감’이거든요. 화면의 사각프레임 너머로 세워진 도덕적 가벽을 담보로, 자유롭게 유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놓으면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상상이 가능해요. 그게 제가 작업하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기도 해서 이번 주제가 흥미롭고 편하게 느껴졌어요. 영상 속 퍼포먼스의 측면이 여기서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하영
해방감이 주제와 형식을 이어주는 키워드가 됐네요.

한솔
네. 그리고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짤방들도 즐겨 보는데요, (웃음) 기존의 맥락에서 어느 일부분만 추출해서 별도로 움직이는 게 분리된 신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요. 내 몸이 지금은 이렇게 온전하게 있지만, 파편적으로 각각 분리가 되서 각자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관점에서 제작한 작업이 있기도 해요.

조훈
기존 맥락에서 탈각되서 이곳저곳 돌아다닌다는 형식을 신체에 대입한 거군요.

한솔
서로 다른 밈meme끼리 만나기도 하고요. (웃음) 그리고 그 밈들의 출처를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잖아요.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웃음) 그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출처에서 벗어난 파편들이 서로 만나고 조합되면서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에서 모습들이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 않은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신체 조각인데 물건 같아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요. 비슷한 맥락에서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잔혹함’이 확 와닿았던 것 같아요. 영상 속에 일어나는 신체 훼손은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은유라고 생각하거든요.

조훈
〈크리크리 메리메리 스마스〉에서 신체 훼손 고어물 장르와 유튜브의 튜토리얼 콘텐츠 영상을 접목하셨어요. 이 두 요소를 연결하려고 했던 이유와 연출 방법이 궁금해요. 
한솔

고어물 장르 영화에서 진짜와 가짜의 기준을 판별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이 이입되는 장면에서 갑자기 생뚱맞은 요소가 나오면 분위기가 확 깨지잖아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아, 이 영화를 양심의 가책 없이 봐도 되겠다.’ 하는 안도감이 들어요. 동시에 약간 무섭기도 하고요. 그리고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나 영상을 많이 접하잖아요. 자극적인 게 진짜 많아요. 어떤 콘텐츠를 읽으면 눈물이 왈칵 나올 정도로 감정이 동요되다가도 손가락으로 휙 넘기면 전혀 다른 게 나오면서 그 감정이 확 휘발돼요. 그래서 약간… ‘이래도 괜찮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훈
정말 전혀 다른 내용이 맥락 없이 이어지죠.

한솔
네. 유튜브 튜토리얼 영상은 만들기와 관련한 내용이 많아요. 사물들이 여기저기 붙고 떨어져 나가곤 해요. 그런데 이런 방식들이 우리가 몸을 소비할 때와 비슷한 건 아닐까 싶었어요. 나조차도 나를 대상화해서 소비하고요. ‘내가 요즘에 영상을 소비하는 행태가 이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영
작업에서 대상화가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튜토리얼이 어떻게 보면 대상을 분해해서 보여주잖아요. 대상화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작가님의 영상 어법과도 굉장히 잘 맞는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훈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인 〈버진 로드〉는 결혼식을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돼요. 작품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려요.
한솔
제 작업은 대부분 살아가면서 느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요. 어떤 로맨스 장르의 영화나 TV 드라마의 마지막 회 장면을 보면 갈등 해결의 방식으로 결혼식을 사용하는데, 저에게 어떤 환각을 강요하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이걸 좀다르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이가 서른 살 넘어가니까,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진짜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웃음) 자꾸 결혼하라고 하는데, 이럴 거면 진짜 내 몸을 반 잘라서 해버리겠다! (웃음) 친구와 농담하다가 출발한 거예요.

하영
우와!

한솔
(웃음) 생각해보니 드레스 입은 몸을 반 잘랐을 때, 쾌감이 있을 것 같았어요. 몸이 양쪽으로 쫙 늘어나고, 그 사이로 내장이 툭툭 떨어지고, 날카로운 갈비뼈가 드러나고… 원래 작품 제목은 ‘웨딩 마치’ 였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버진로드’라는 단어가되게 웃기더라고요. 마지막 처녀의 길. (웃음) 그리고 통상적으로 결혼식은 순백이 코드더라고요. 그래서 피가 막 나오면 쾌감이있겠다 싶었어요. (웃음) 이전 작업에선 튜토리얼 문법을 차용했는데, 이번에는 자기 계발 영상을 참고했어요.

하영
자기 계발 영상은 어떤 이유로 참고하게 되었나요?

한솔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시각 콘텐츠들은 많은 부분 욕구를 배출하기 위한 것처럼 보여요. 예컨대 먹방 콘텐츠는 소비자의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허구의 배출까지 담고 있어요. 욕구와 신체 기관이 연결되어 있고, 그 욕구를 허구로 배출하는 과정이 저의 작업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경우에는 정신적인 배출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거의 모든 검색을 유튜브에서 하거든요? ‘마음이 힘들 때’, 이렇게만 적어도 힐링 영상이 나오고 (웃음) ‘게으르다고 느낄 때’, ‘지친다고 느낄 때’, ‘재미없을 때’, 이렇게 진짜 나이브하게 적어도 거기에 맞는 영상들이 나오는 거예요. 다들 그런 결핍이 있는지, (웃음) 그래서 그런 걸 보면 또 약간 힐링이 돼요.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그런 영상을 찾아보고, ‘내 인생에 열정이 없나?’ 이런 생각이 들면 동기부여 영상 찾아보고, 그러면 또 막 가슴이 벌렁벌렁해요. 음악부터가 두두둥둥둥! ‘이제 열심히 살겠다!’. ‘난 할 수 있어!’, ‘나도 늦지 않았어!’ (웃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 승리하는 거죠. 나중에는 이것도 그냥 자기 위로일 뿐이고, 확 증발되고, 이런 상태를 반복해요. (웃음) 결혼이라는 것도 유사한 맥락으로 느껴졌어요. 이 과정이 포르노를 찾아보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정신적인 결핍도 충족이 되니까 찾아보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링크가 됐던 것 같아요.

하영
결혼을 계속 강요받다보면 ‘결혼을 해야지 내가 행복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아 근데 내가 왜 그런 말을 따라야되지?’ 반문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죠.

한솔
네. 맞아요. 왔다갔다 하더라고요. (웃음) 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조훈
작업을 제작하면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어떤거에요?

한솔
어디까지 사실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어요. 이번엔 선을 한 번 넘어가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의도한 연출보다 색이 너무 빨갛고, 오브제의 정체가 드러나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스토리 중간에‘이건 뭐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관람객의 해석이 들어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크로마키가 탈출구였어요. (웃음)
조훈
크로마키는 어떤 이유로 사용하게 되었나요?

한솔
처음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어요. 웨딩홀을 빌릴 수도 없고, 야외 촬영을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크로마키로 장소를 극복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가 꼭 찍은 것을 넣어야 될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장소 영상을 쓸 수도 있잖아요. 유튜브에서 대자연, 요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한 영상을 배경에 넣었어요. 크로마키 기법을 사용하면서 실제와 가짜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이 밸런스가 제일 중요했거든요. 이전에는 가짜 같은 연기, 소리, 오브제가 등장하는 타이밍에 따라서 밸런스가 조절됐었는데, 이번에는 오브제가 피투성이로 포박된 거예요. 그래서 이를 낮출 방법으로 크로마키 기법을 사용했어요.

하영
그럼 처음에는 크로마키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썼던 건데, 나중에는 작업에 있어서 진짜와 가짜, 이런 부분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식이 되는 거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 적용되었나요?

한솔
영상에서 행진 장면이 나와요. 그러다가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그 사이로 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거든요? 몸이 반 잘랐을 때 떨어진 머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시점이 나와요. 그때 ‘동기부여 영상이 나오면 어떨까?’ 싶었어요. 내 머리가 내 몸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풍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청량한 바다를 배경으로 해바라기꽃들이 휘몰아치며 흩날리는 장면을 만들었어요. 해바라기가 욕망의 의미를 담고 있더라고요. ‘행복하고 부유하게 잘살자.’ (웃음) 부모님이 보내주는 영상들도 배경이 유토피아 같은 자연이고, 무지개가 있고, 좋은 의미를 담은 꽃들, 이런 게 다 들어가 있잖아요. (웃음) 모두가 잘 됐으면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모여서 괴기스러운 게 나오는 것 같아요.

하영
약간 크리피하고요. (웃음)

한솔
네네. (웃음) 배경에 그런 영상 이미지들을 넣은 이유도 결혼식을 바라보는 시점 때문이에요. 결혼식이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런 감정들을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조훈
온라인 미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종종 자신의 배경을 바꾸잖아요. 자신의 장소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재미로 엉뚱한 장소를 배경으로 설정하기도 하고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도 많이 활용되기도 하죠. 예전에는 크로마키가 영화나 방송에서 배경 합성의 용도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엔 용도 변주를 많이 하면서 기술을 확장해서 다른 방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편집 프로그램에서 크로마키를 사용할 때 필요한 조건들이 있잖아요. 가령 배경에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배경 컬러를 조절하는데, 픽셀의 색 정보를 치환한다는 작동원리를 바탕으로 변주할 수 있는 방식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한솔
맞아요. 저도 처음엔 배경을 초록색으로 깔았어요. 그런데 영상에 잔디가 많이 나오고 화관에도 초록 이파리가 있어서 안되겠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파랑으로 바꿨어요.

하영
전시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셨나요?

한솔
서울시립미술관 3층에서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요, 인간-괴수가 홀로 자신의 몸을 반으로 갈라 결혼식을 올리는 내용의 영상작업인 〈버진로드〉와 몸을 반으로 가르는 신체의 변형 과정에서 상상한 촉각을 담은 의성어 의태어 벽화 드로잉 〈츄-윙〉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중앙에 드레스 천으로 만든 원형 커튼이 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본인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영상을 관람하는 것처럼 동선을 연출하였어요. 몸이 둘로 갈라지듯, 영상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두 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헤드폰을 두 개 설치 했어요. 두 명의 관객이 하나의 몸(커튼) 안에 들어있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커튼 밖으로 나오면 코너 벽을 따라 양옆으로 벽화가 있어요. 〈츄-윙〉은 지구젤리Trolli planet gummy를 먹을 때 느껴지는 입안의 촉감을 몸이 반으로 나뉠 때와 연동해서 상상해 본 거예요. 반으로 나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신체적 촉각을 상상하여 만화 효과음의 표현 방식을 차용해 흑색 페인트로 제작했어요. 촉각적 상상을 소리와 연동해서 마치 음이 빛처럼 퍼지고 맞은편 벽에 소리가 반사되는 형태를 표현해 보았어요.


조훈
이번 비엔날레 참여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한솔
비엔날레 팀 소속 큐레이터님들과 나눈 대화들이 정말정말 좋았어요. 펜데믹 상황 때문에 1년이 연기된 만큼 전시 준비도 길어졌는데, 그때마다 제가 고민하는 부분에 대하여 저도 생각하지 못한 연결고리들을 많이 제안해 주셨어요. 그 이야기 과정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계획은… 올해 12월에 드로잉만으로 구성한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준비하는 중이에요!


끝.